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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개봉한 《브링 잇 온(Bring It On)》은 단순한 십대 하이틴 스포츠 코미디로 여겨질 수 있지만, 이 영화는 그 이상을 품고 있습니다. 미국 고등학교 치어리딩이라는 특수한 문화를 배경으로, 리더십, 경쟁, 정체성, 그리고 문화적 전유(cultural appropriation)라는 시대적 화두까지도 세련되게 녹여낸 이 작품은, 개봉 이후 오랜 시간 동안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컬트 클래식(명작)이자 장르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줄거리 요약: 토랜스의 리더십, 그리고 새로운 도전
영화의 주인공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리버사이드 고등학교의 치어리딩 팀, ‘토로스(Toros)’의 새 주장 토랜스 쉽맨(커스틴 던스트 분)입니다. 팀은 5년 연속 전국 치어리딩 대회 우승을 차지한 명문 팀이지만, 그 영광이 진정한 실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야기가 급변합니다.
토랜스는 전 주장 ‘빅 레드’가 팀의 치어리딩 루틴을 아프리카계 미국인 고등학교인 ‘이스트 컴프턴 클로버즈(Clovers)’로부터 표절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클로버즈는 자신들의 창작물을 부당하게 도둑맞았다고 주장하며 대회에 직접 출전하기로 결심하고, 토랜스는 윤리적 딜레마와 팀의 명예 사이에서 큰 혼란을 겪습니다.
결국 토랜스는 기존의 모든 루틴을 포기하고, 팀원들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치어리딩을 창작하며 진정한 실력과 열정을 증명하기 위한 도전에 나섭니다.
하이틴 스포츠 코미디를 넘어선, 의미 있는 주제의식
《브링 잇 온》은 하이틴 장르의 전형적인 문법 ― 빠른 전개, 경쾌한 음악, 톡톡 튀는 캐릭터, 연애 요소 ― 을 따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다 성숙하고 복합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1. 리더십과 책임의 성장 드라마
주인공 토랜스는 단순히 치어리딩 팀을 이끄는 리더가 아니라, 어려운 선택 앞에서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세우고 실천해가는 성숙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그녀는 팀의 명성을 유지하기보다는, 윤리적 책임을 선택함으로써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성장 서사는 특히 젊은 여성 관객들에게 “좋은 리더란 무엇인가?”, “집단 안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용기”라는 중요한 화두를 던져줍니다.
2. 문화 전유(Cultural Appropriation)에 대한 문제 제기
당시 하이틴 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브링 잇 온》은 백인 중심 커뮤니티가 흑인 커뮤니티의 문화를 가져다 쓰고 영광을 차지하는 구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클로버즈는 기존 하이틴 영화에서 주변적 배경으로만 그려지던 흑인 캐릭터가 아니라, 당당하고 주체적인 서사 중심의 인물들로 등장합니다.
영화는 클로버즈가 창의성과 개성을 바탕으로 치어리딩을 만들어냈음을 강조하며,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강력한 주체로 묘사함으로써 다양성과 공정성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시킵니다.
스타일, 연출, 사운드트랙: 2000년대 감성의 완벽한 결정체
《브링 잇 온》의 매력 중 하나는 당시의 유행을 그대로 반영한 스타일리시한 의상, 빠른 편집, 그리고 중독성 있는 사운드트랙입니다. 영화는 2000년대 초반 미국 10대 문화의 감성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으며, 이는 영화가 개봉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레트로’ 콘텐츠로 소비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치어리딩 장면은 단순한 퍼포먼스를 넘어서, 집단 에너지와 팀워크의 정점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각종 공중 돌기와 창의적인 동작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며, 그 안에 담긴 훈련의 노력과 열정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합니다.
인물 분석: 토랜스와 아이세스, 두 리더의 대비
토랜스와 클로버즈의 주장 **아이세스(가브리엘 유니언 분)**는 대조적인 위치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공통된 가치관과 실력으로 서로를 인정하게 됩니다. 두 인물 모두 자신의 팀을 위해 헌신하며, 정당한 방식으로 경쟁하고자 하는 강한 주체성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여성 간의 경쟁은 기존 영화에서 흔히 그려지던 질투와 모략의 관계가 아니라, 존중과 성장의 서사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매우 진보적입니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하이틴 장르 내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서사 전개 방식입니다.
영화 《브링 잇 온》이 남긴 유산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며, 수많은 속편과 TV 스핀오프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원작만이 갖고 있는 진정성, 사회적 메시지, 캐릭터 서사의 완성도는 후속작들과는 차별화됩니다.
무엇보다 《브링 잇 온》은 10대 여성 중심의 성장 서사, 다문화적 시각의 균형,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고민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단순한 오락 영화 이상의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20년대에 들어서도 이 영화는 여성 리더십, 다양성과 포용, 정당한 경쟁이라는 시대정신을 반영한 대표적인 청소년 영화로 언급되며,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사이의 문화적 공감대를 잇는 역할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결론: 단순한 하이틴 영화가 아닌, 당당한 세대 선언
《브링 잇 온》은 단지 치어리딩을 배경으로 한 십대 코미디로 치부하기엔 아쉬운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이기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고전적인 진리를, 젊은 세대의 언어와 감각으로 재해석하며 진정한 실력과 정직함의 가치를 보여줍니다.
관객은 토랜스를 통해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 **‘어떻게 올바르게 성공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브링 잇 온》은 오락성과 메시지, 캐릭터와 연출, 그리고 사회적 감수성이라는 요소를 고루 갖춘, 시대를 초월한 하이틴 명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